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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김연수

 

원더보이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연수
출판 : 문학동네 201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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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우주의 모든 별들이 운행을 멈췄던 순간을 기억하며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별들이 그렇게 가만히 멈춰서 우리를 향해 환하게 빛을 내뿜는다면 말이에요. 이 우주의 한 귀퉁이에 있는 지구라는 희미한 푸른 점을 향해. 그 작은 별에서 길어봐야 겨우 1백년 정도를 살았을 뿐인 한 인간을 향해. 그러니 42년만 살았을 뿐이라면, 그건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었겠지요.

....

아빠가 살았던 42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별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빛들을 나눠서 쪼일 수 있었다면 아빠는 평생 매초당 7조 5499억 5047만 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예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1초였을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1초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빠는 울지도 않았을 텐데요. 소주를 마시지도 않았을 거고. 약병을 들고 죽겠다고 아들에게 소리치지도 않았을 테죠. 아빠 인생의 1초가 그렇게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말이죠.

하지만 우주의 모든 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일제히 빛을 내뿜는 순간은 단 한 번뿐이에요.

태어나서 단 한 번.

우리가 죽을 때.

그렇게.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빛으로 죽는 것이죠.

영원히 빛으로 죽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아빠?

39쪽, 41쪽, 42쪽

 

아빠가 껄껄대고 웃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을 부라리며 아빠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빠의 웃는 얼굴 뒤로 지나가는 밤의 거리는 가로등이 많지 않아 어두웠다. 하지만 스쳐가는 검은 건물들 멀리 펼쳐진 산동네에서는 집집마다 흘러나온 불빛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한 점 한 점, 동시에 한데 모여. 그 풍경에 비춰보니 아빠는 꼭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우주비행사 같았다. 온 우주가 들썩이도록 웃어대는 우주비행사.

22쪽

 

그러므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14쪽

 

나는 아이가 나오는 소설들은 꽤 좋아하는 편인데 어렵고 힘들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시대의 외곽에 있기 때문에 그리 처절하지 않고 누구나 겪었을 법한 어린 시절 나름의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 공감이 더 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라기엔 조금 큰 15살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마음속 이야기가 들리고, 타인을 자신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드는 초능력을 얻지만 그 능력은 권력자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수단으로만 이용되었다. 아이가 권력을 위해 자신을 돌보던 권대령에서 벗어남. 하나뿐인 가족이 사라져 너무 고독해서 생긴 초능력인지도.

처음 접하는 김연수의 소설이었다. 문장이 아름답고 깔끔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제목들도 운율이 맞으면서 재미있고 내용따라 짧게 끊어버린 페이지 구성도 좋았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평범해지고 나서야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나를 외롭고 가난한 소년으로 만들었다.

217

 

1천65억분의 1만큼 고독한 인간이지만 1천65억 개 중 1개의 덧니로 한순간 특별해질 수 있는 인생.  어쩌면 이것이 기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