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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풍자극 - 폴 오스터

복숭아꽃 2012. 11. 26. 21:42

 

브루클린 풍자극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폴 오스터(Paul Auster)
출판 : 열린책들 200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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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죽을 장소를 찾아 브루클린에 왔다. 33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와 이혼하고, 폐암은 완화되는 중이었으나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았다. 31년간 다니던 보험회사의 일자리도 잃었다. 딸과의 관계는 서먹하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책>의 프로젝트로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히 헌책방에서 일하는 조카 톰 우드를 만나고 헌책방의 주인이며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해리 브라이트먼을 만나고, 해리와 톰과 함께 실존의 호텔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한다.  해리가 하려는 옛 연인과의 위험한 거래, 톰의 동생인 오로라의 딸 루시가 갑자기 톰에게 찾아오는가 하는 둥 끊임없이 사건이 터지는 나날을 보내는 나는 죽을 장소라 찾아왔던 브루클린에서 사랑도 찾고, 꿈도 찾는 행복한 날을 맞는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글이 어떻게 쓰여지는가를 명실히 보여주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오고 개성적인 다양한 인물들이 나는 원래 그러한 사람이다 하고 당연한 듯이 등장하고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지루할 틈 없이 자잘하고 큰 사건이 등장하는데 개연성이 없지도 않다. 400여페이지나 되는데도 지루함 없이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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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쯤에는 물론 그 계집아이도 인형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아요. 카프카는 그 아이에게 다른 것을 대신 주었고 그3주가 다 지난 뒤에는 인형의 편지들 덕분에 아이의 불행이 치유되었지요. 그 아이는 이야기를 갖게 되었어요. 사람이 이야기 속에서, 상상의 세계 속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운이 좋다면 이 세상의 고통은 사라지고 말아요. 그 이야기가 지속되는 한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지요.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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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일이 간단할 줄 알았지만 막상 쓰려니까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어조를 찾을 때까지 무려 예닐곱 번이나 썼다 지우기를 반복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어서, 빳빳한 자존심과 눈물 어린 후회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상대방에게 진실로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면 모든 사과가 다 공허한 거짓말로 들리기 마련이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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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식사를 끝내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 엔진에서 자동차 역사상 가장 특이한 소리라고 할 만한 불연소음이 일었다. 나는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앉아 그 소음에 대해 20분 넘게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직도 그 소리를 묘사할 정확한 단어, 제대로 표현할 기억에 남을 구절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귀에 거슬리는 요란한 웃음소리? 딸꾹질을 하는 듯한 피치카토?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너털웃음? 내가 들었던 소리, 목이 막힌 거위나 술 취한 침팬지의 입에서 나올 법한 그 소리를 표현하기에는 아마도 내 능력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언어가 너무 빈약한 도구일 것이다. 그 너털웃음 같은 소리가 마침내는 단음으로 시끄럽고 길게 늘어지는 튜바 소리, 어찌 들으면 사람의 트림 소리 같기도 한 소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맥주를 들이켠 사람의 만족스러운 트림 소리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만성 소화 불량으로 꾸르륵거리는 소리, 말기에 이른 가슴앓이로 고통 받는 남자의 목에서 공기가 새어 나오는 듯한 낮은 소리였다. 톰이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어 보았지만 두 번째로 키를 돌렸을 때는 나지막한 신음 같은 소리밖에 나지 않았고 세 번째는 아예 먹통이었다. 협주곡은 끝이 났고 독약을 먹은 내 올즈모빌은 심장 마비에 걸려 있었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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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는 아직 오전 여덟시였고,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밑에서 거리를 따라 걷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그때까지 살아왔던 어느 누구 못지않게 행복했다.

p.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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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